마티 슈프림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과연 달리기는 삶과 가장 가까운 행위다. 어머니의 탯속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하는 인간에게 삶은 끊임없는 경주다. 목적지는 어디인가. 목적이 있기는 한가. 어쩌면 매 순간이 단발적 위기와 모면으로 이루어진 무의미한 총합일 지도 모른다. 낙오되고, 따라잡고, 앞지른다. 그 시절 카사베츠와 스콜세지를 연상케 하는 이 한 편의 촌극은 ‘마티 마우저’라는 어느 탁구꾼의 기상천외한 레이스를 좇는다.

말이 좋아 전문 체육인이지 실상 탁구 잘 치는 사기꾼이나 다름없는 마티는 근래 보기 드문 비호감 주인공이다.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고, 애인을 버리고, 유부녀를 희롱하고, 투자자의 돈을 뜯고, 친구들을 등쳐먹는 그에게 여느 주인공처럼 공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스포츠맨으로서의 긍지는 지갑의 부피와 비례하고, 자신의 아이를 밴 여자에게 ‘나는 체외사정만 한다’며 태연하게 발뺌하는 그가 스스로 자부하는 그 ‘목적’이란 것은 도대체 뭘까. 가게 동료에게 총을 겨누면서까지 얻어낸 돈으로 영국의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그는 일본 출신의 복병을 만나 2등이라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맞게 된다. 설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본에서 열리는 두 번째 대회에 참여해 보란 듯이 우승하는 것뿐. 그 참여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여정이 곧 이 영화의 플롯이다.

돈을 구하려는 과정에서 셀 수 없는 인물이 마티와 엮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연속해서 벌어진다. 인종적 뉘앙스가 다분한 이 기행은 같은 레이스를 달리는 동반자와 낙오자들로 가득 차있다. 언뜻 파편적으로 보이는 인물과 사건 사이 갖가지 연결고리를 배치함으로써 영화는 경주가 인간의 존재조건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애물단지처럼 마티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그의 애인 레이첼. 내연관계임에도 덜컥 임신해 버린 그녀는 남편에게 얻어맞아 눈에 멍이 크게 든 채로 마티를 찾아온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달고 다니며 돈을 찾아 헤매던 마티는 벽에 부딪치게 되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다 눈에 든 멍이 진짜 상처가 아니라 그저 색칠한 가짜임을 알게 된다. 사기당했음을 깨달은 마티는 레이첼을 강하게 비난하지만 정작 같은 방에서 본인이 등쳐먹으려던 사업 동료 디온에게 ‘도대체 어떻게 주황색으로 “색칠”을 했냐’며 감탄했던 게 불과 하루 전 일이다. 마티는 레이첼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도리어 칭찬해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모세 인질금 뜯어먹기가 끔찍한 살인으로 끝을 맺고(당연히, 개 주인도 사기꾼이다), 돈을 구할 길이 요원해진 마티는 호텔에서 연을 맺은 퇴물 여배우 케이를 찾아간다. 마티가 말뿐인 허풍선이임을 진작 간파한 그녀지만 그가 제공하는 달콤한 위로에 못 이겨 고가의 목걸이를 내어준다. 짐짓 감동한 마티는 또다시 케이의 목덜미를 잡고 거칠게 애무하며 공원 바닥에 그녀를 눕히는데, 그녀의 온몸을 구석구석 핥으며 흥분이 고조되던 찰나 경찰이 들이닥쳐 구금될 위기에 놓이게 되고, 두 사람은 별 수 없이 목걸이를 뇌물로 내놓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다. 영화의 초반부, 장엄한 연출로 그려졌던 클레츠키의 일화 – ‘나치 수용소에서 숲을 거닐던 중 벌집을 발견해 꿀을 온몸에 발랐고, 다음 날 달릴 기력을 얻기 위해 동료 수감자들에게 핥게 했다’ – 와 기묘하게 공명하는 이 대목은, ‘달리기 위해 영양분을 얻는다’라는 같은 원리 아래 역사적 비극과 옹색한 치정 사건을 병치시키며 그것이 시간과 윤리를 초월한 인간동력의 기본 전제임을 암시한다.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이 여러 차례 물 먹인 사업가이자 케이의 남편인 록웰에게 찾아간 마티는, 무릎 꿇고, 읍소하고, 엉덩이까지 맞아가며 가까스로 일본행 티켓을 얻어낸다. 짓밟힌 자존심이 무색하게도 그곳에서 만난 탁구연맹회장은 마티가 명단에서 제외되었음을 선언하고, 그가 동의한 행사경기마저 온갖 굴욕적인 조항들로 채워져 있음을 깨닫는다. 각본대로 고토에게 패배하고 돼지에게 키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진 야바위꾼은 돌발행동을 일으킨다. ‘이건 짜고 친 드라마고 진짜가 아니다. 난 진짜 게임이 하고 싶다. 당신들도 진짜 게임을 보고 싶지 않으냐’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며 판을 뒤엎은 마티는 고토에게 동의를 받아내고, 치열한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고는 다리가 풀려 바닥에 드러눕는다. 은퇴 후 처음 서게 된 무대 위, 후광을 뒤로한 채 설렘 가득한 미소를 띄우던 케이와 함께 영화가 안식을 허용하는 단 둘 뿐인 순간이다. 록웰이 제아무리 무시무시한 수사로 그를 위협해도 상관없다. 이것이 마티가 말하던 ‘목적’이다, 긴긴 경주 끝에 서있는 깃발이다. 진짜는 오로지 무대 위에 있다.

앞서 영국의 대회가 한창이던 중 마련된 인터뷰 자리에서, 현 챔피언인 클레츠키와의 경기를 어떻게 준비 중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마티는 ‘아우슈비츠에서 돌아온 걸 후회하게 해 주겠다’고 답하고, 일본의 무명 선수에 관한 질문에는 ‘세 번째 원자폭탄을 떨어뜨려주겠다’며 커리어를 끝장낼만한 문구들을 늘어놓은 바 있다. ‘나도 유대인이니 괜찮다’며 너스레를 떠는 그에게 인종은 유의미한 사건이 아닌 듯하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행적 전체를 유령처럼 지배하는 개의 이름은 ‘모세’고, 개를 찾아간 집에서는 ‘빌어먹을 유대인’이라는 인종차별적 폭언과 날 선 총구를 마주하며, 고토와의 재승부를 치르고 돌아온 공항에서는 승전국의 군인들과 같은 개선장군의 위치에 놓인다. 격납고를 빠져나오는 마티의 뒤에 “아빠!”를 외치며 군인의 품에 안기는 소녀를 배치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첫 대회를 우승한 고토가 뉴스 인서트를 통해 전국적 영웅이 되었듯 마티도 하나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는 그가 오롯이 자신만의 레이스를 달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회는 계속해서 마티를 유대인으로 호명하고, 등에 보이지 않는 성조기를 붙인다. 그는 챔피언이다.

러닝타임 내내 카메라는 무언가를 두고 멀어지는 움직임을 반복한다. 낙오자와 추월자를 가시적으로 가르는 움직임을 통해 카메라는 끊임없이 위계를 형성한다. 달리는 자동차 뒤로 버려지는 모세, 레이첼을 두고 건물을 빠져나가는 마티 따위가 그렇다. 카메라는 늘 선두주자의 어깨에 붙어, 남겨진 주자는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다. 딱 한 번, 만삭의 몸으로 인해 잰걸음으로도 모세의 주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레이첼이 따라 잡히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는 곧장 납치와 공범의 피살로 이어지며 내내 감추어져 있던 추월의 폭력을 폭로한다. 다시금 기회를 잡은 마티가 모세 주인의 코트 주머니에서 돈다발을 훔치고, 자동차에 올라타 룸미러를 통해 레이첼과 주고받는 미소는, 이인삼각의 발박자가 맞았을 때 오는 도적들의 유대감이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분만실로 향하는 레이첼을 더 이상 따라갈 수 없게 되자 마티는 처음으로 낙오자의 입장에 놓이게 된다. 승자만을 좇던 시선이 이전과 달리 떠나지 않고 마티에게 머무는 이유는, 그곳이 그가 있어 마땅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소명을 완수한 마티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레이첼이 해산한 병원을 찾아간다. ‘방명록을 써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마티는 “제가 아버지입니다”라고 지나가듯 답한다. 내내 자신의 부성을 부정하던 그가 처음으로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신생아실의 유리창 너머로 마티 주니어를 내다보던 마티는, 점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낸다. 이때 흘러나오는 곡은 티어스 포 피어스의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 마티는 직감한다. 도입부를 장식했던 정자 레이스는 끝이 아니라 시작의 시작일 뿐이었음을. 앞에는 끝없는 경주만이 놓여있음을. 뒤에는 수없는 낙오자를 남기게 될 것임을. 옆에는 내 뒤통수를 치고 지갑을 털어가려는 깡패들로 가득차 있음을. 그리고 그 안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처절한 형제애가 담겨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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