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호프. 호포? HOPE. 솔직해지자. SF는 미국의 전유물이다. 아니면 적어도, 오늘날의 블록버스터 SF는 미국의 전유물이다. 초호화 우주선과 푸른 피부의 외계인을 생동감 넘치게 영상화할 수 있는 압도적 자본력 때문만이 아니다. 물론 그 이유도 크긴 하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미국만이 그 미래를 ‘믿을 만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째서 첩보전은 항상 중동에서 벌어지고, 핵전쟁은 러시아만 시작하며, 갱스터의 암투는 이탈리아계 … 더 읽기

마티 슈프림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과연 달리기는 삶과 가장 가까운 행위다. 어머니의 탯속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하는 인간에게 삶은 끊임없는 경주다. 목적지는 어디인가. 목적이 있기는 한가. 어쩌면 매 순간이 단발적 위기와 모면으로 이루어진 무의미한 총합일 지도 모른다. 낙오되고, 따라잡고, 앞지른다. 그 시절 카사베츠와 스콜세지를 연상케 하는 이 한 편의 촌극은 ‘마티 마우저’라는 어느 탁구꾼의 기상천외한 레이스를 좇는다. 말이 … 더 읽기

<토이 스토리 5>

신발 밑창에 찍힌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Toy Story 5>, 2026 <토이 스토리 4>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개별 영화로서의 만듦새와는 별개로 마땅한 당위성 없는 후속작이었다는 데에는 많은 관객이 동의할 것이다. 토이 스토리, 즉 인형의 이야기란 원래 어떤 이야기였던가? 1, 2, 3편 가릴 것 없이 그것은 ‘제자리를 지키는’ 이야기였다. 버즈가 스스로를 지구에 불시착한 우주특공대원으로 … 더 읽기

<왕의 남자>, <결혼 소동>, <더 리더>

<왕의 남자>, 이준익 <왕의 남자>, 2005 2000년대, 동성애, 사극이라는 도전적 과제들을 한 데 묶어놓고도 전위에 심취하는 일 없이 로맨스 서사에 집중했다는 사실이 가상하다. 억울하게 죽은 어머니를 소년에게 투영하는 왕ㅡ 정신분석학 지지자는 어머니의 권위를 가진 남자를 압박하는 것에서 전복의 의지를 볼 것이고, 보통 관객은 압제자의 일탈적 남색과 대비되는, 가나다 콤플렉스 없이 상호존중으로 지탱되는 이반의 일반성(건강한 성애는 … 더 읽기

<타인의 삶>

혹은 음악의 힘 <Das Leben der Anderen>, 2007 예술이 인간을 고양시킨다는 믿음보다 더 독일적인 것이 있을까. 만약 독일을 대표하는 장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빌둥스로만(Bildungsroman)’, 즉 교양소설일 것이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가 각본 및 연출을 맡은 영화 <타인의 삶>은 냉전기 동독의 방첩기관 슈타지의 베테랑 요원 게르트 비즐러가 한 편의 예술과 타인의 삶을 통과하며 인간성을 회복해 나가는 … 더 읽기

<군체>

뭉치면 죽고 흩어져도 죽는다 <군체>, 2026 비록 그 끔찍한 생물학적 외피가 먼저 거부반응을 일으키긴 하지만, 좀비란 본래 개별성의 붕괴에 대한 공포다. 침을 질질 흘리고, 이를 딱딱 부딪치며, 다리를 끌고 다니는 이름 없는 존재가 되는 것.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지만 그 역사의 길이만큼 대접받진 못하는, 마치 분식과 같은 장르로서 좀비는 지금까지 살아남았고(아니면 죽어남았고?), 무수한 선례 중 몇몇만이 … 더 읽기

<브루탈리스트>

미국천장 <Brutalist>, 2024 자못 장엄하고 웅장한 오프닝ㅡ 카메라는 좁고 기다란 복도를 통과해 드리운 창공, 그리고 뒤집힌 자유의 여신상을 비춘다. 물구나무선 미국의 초상은 분명 아메리칸드림의 민낯을 비추겠다는 영화의 출사표다. 부다페스트의 저명한 건축가 라즐로 토트는 나치 정권의 마수로부터 도망쳐 미국으로 건너왔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막노동을 전전하던 그는 가까스로 어느 사업가의 개인 서재를 작업할 … 더 읽기

<마녀배달부 키키>

도회의 예술 <魔女の宅急便>, 1989 무언가를 전달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배달과 예술은 닮았다. 어느덧 열세 살이 된 키키는, 정식 마녀로 거듭나기 위해 정든 마을과 가족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건조한 일기예보와 흥겨운 팝송이 흘러나오는 라디오, 키키의 검은 고양이 지지를 태운 엄마의 빗자루는 고무공처럼 나무 사이를 튕기며 바다가 보이는 마을로 키키를 나른다. 전원적인 고향 마을과는 완전 딴판인 도시 … 더 읽기

<모노노케 히메>

돌려주고 돌려받다 <もののけ姫>, 1997 <모노노케 히메>는 대작이다. 자국의 고대 신화를 차용한 설정, 신과 인간의 대립, 장중한 오케스트라 음악과 ‘살아라, 그대는 아름답다’라는 비장한 캐치프레이즈까지. 이미 수없이 분석되고 해체된 거장의 걸작을 이제와 곱씹는 게 의미가 있는 일일까 싶지만, 그럼에도 영화의 주인공 아시타카처럼 정면으로 돌파해 보고자 한다. 많은 관객이 헷갈리는 부분이지만, 아시타카 여정의 목표는 도입부에서 재앙신에게 물려받은 저주를 … 더 읽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그대들 어떻게 할 것인가 <風の谷のナウシカ>, 1984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결말은, 개봉 당시 ‘진부한 영웅 서사’라는 명목으로 비평계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일견 그렇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숱한 여정을 거친 구도자가 양 진영의 한가운데에 몸을 던지고, 기적적으로 부활한 뒤 갈등을 봉합하고는 군중으로부터 환호를 받는다. 눈물을 훔치는 노파와 찢어져라 웃는 아이들. 이들 장면의 역할은 대개 시트콤의 웃음 트랙과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