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 스토리 5>

신발 밑창에 찍힌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Toy Story 5>, 2026

<토이 스토리 4>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개별 영화로서의 만듦새와는 별개로 마땅한 당위성 없는 후속작이었다는 데에는 많은 관객이 동의할 것이다. 토이 스토리, 즉 인형의 이야기란 원래 어떤 이야기였던가? 1, 2, 3편 가릴 것 없이 그것은 ‘제자리를 지키는’ 이야기였다. 버즈가 스스로를 지구에 불시착한 우주특공대원으로 착각하고, 우디가 앤디의 손에서 벗어나 수집가의 컬렉션이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두 몽상가를 붙잡은 것은 그 유명한 간판대사- “YOU ARE A TOY!”, 즉 정체성의 재확인이었다. 시리즈 전체의 강령이라고 봐도 좋을 저 문장은 분명 가족 윤리의 패러디다. ‘너는 아버지야, 나가서 일을 해’, ‘너는 어머니야, 안에서 일을 해’, ‘너는 자식이야, 학교에 가서 공부해’. 각자의 역할에서 제 몫을 다하는 대가로 시스템은 사랑과 안락을 제공한다. 자아실현의 환상은 순간의 비행이요, 일탈일 뿐이다. 헬멧의 차폐막이 벗겨지자 상상호흡곤란을 일으키는 버즈의 꼴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어 있는지 보라. 또다시 버려질 위기에 처한 제시는 인형답지 않은 공황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단어를 써도 괜찮다면, <토이 스토리>는 보수적인 영화다. 정든 주인과의 이별을 담은 <토이 스토리 3> 역시, 그저 새 주인을 만나 그녀를 기쁘게 하는데 전념하는 결말로 끝맺음으로서 삼부작은 테마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토이 스토리 3> 이후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출산율은 1명대로 떨어지고, 대가족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며, 개인의 자아실현이 공동체의 안정에 앞서는 미덕이 되었다. <토이 스토리 4>는 더 이상 나를 알아주지 않는 주인의 품을 떠나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 나서는 우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삼부작의 우디는 관계를 떠나는 영웅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는 영웅으로서 줄곧 그려져 왔다. 우디의 직업이 마을의 치안을 지키고 동료시민을 보호하는 보안관으로 설정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런 그가 십 년 넘게 몸담은 인형의 집을 떠나 돌연 자아정체성을 찾아 나선다는 전개는, 캐릭터의 자연스러운 성숙보다는 시대정신에 영합하려는 포퓰리즘적 발상에서 착상된 후속작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토이 스토리 5>는 그렇게 삐뚤어진 선 위에서 출발한다. 제시를 주인공으로 삼은 본작은 <토이 스토리 2>의 백미였던 “When She Loved Me”의 바로 그 언덕에서 시작해 그녀가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좇는다. 시간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더 이상 신세대 전자기기와 경쟁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주인이 성장하고 언젠가 그녀를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결코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 영화의 초반부, ‘아이들은 인형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부대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제시의 모습은 단순히 퇴장을 거부하는 인형의 몸부림을 넘어선 구세대적 가치관의 일방적 투사다. 전자기기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학을 떼던 제시는 그들 역시 다음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창고 신세로 밀려나는, 같은 운명을 지닌 다른 완구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한층 누그러진다. ‘진짜 놀이를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그녀가 스마티 팬츠의 오락 기능을 밤새도록 즐기며 중독 증세를 보이는 장면은 신세대를 향한 그녀의 비난이 무지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태블릿 PC인 릴리패드와 장난감 인형인 제시가 각자의 역할(전자는 소통, 후자는 놀이)을 받아들이고 화해하며 종합을 이룬다. 인형이 주인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은, 버즈 군단의 기이한 여정마따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좋은 이야기다. 전작과 완전히 어긋난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토이 스토리 5>의 스토리 자체가 전자기기와 인형의 충돌이라는, 소도구적 상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예상가능한 결말에 도달하긴 하지만, <토이 스토리 4>와 일으키는 불협화음에 비하면 이는 사소한 결점이다. 부조화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구석은 역시 우디의 행적이다. 엄연히 시리즈의 주인공인 이상, 우디가 보니의 집으로 복귀하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관객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 그의 행적이 전작에서 갑작스럽게 발현된 ‘길 잃은 인형 전문 사회복지사’보다는, 삼부작에서 꾸준히 보였던 ‘인형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에 더 가깝다는 점이다. 크게 보면 인형과 주인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궤가 맞을지도 모르나, 연출의 무게가 단순히 인형의 위치가 아니라 역할과 소속감에 실려있기에 두 가지를 흐린 채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토이 스토리 4>가 남긴 우디의 새로운 동반자 보 핍과 듀크 카붐은 카메오에 가까운 분량으로 소모되고, 그의 새 소명이었던 인형 구출 작업은 초반 5분 남짓의 시퀀스로 가볍게 끝나버린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중반부부터는 삼부작에서 숱하게 봐왔던 우디-버즈 콤비의 버디무비, 영락없는 그것이다. 우디가 정말로 주인 없는 인형의 삶에도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면 제시를 보니에게 돌려놓으려고 안간힘을 쓸 게 아니라 자신과 함께 떠나자고 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토이 스토리 4>가 당당히 내세운 결론이었음에도 그것을 믿을 힘까지는 없었던 까닭에, 우디가 ‘인형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자신의 오랜 역할로 복귀하고, 버즈와 제시가 결혼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관계로 진입하며 끝나는 결말은 전작들과 의도하지 않은 아이러니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토이 스토리 5>가 증명하는 것은 전자기기가 인형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도, 구세대와 신세대가 화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아니다. 오히려 시리즈가 수십 년 동안 반복해 온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너는 무엇인가? 너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너는 어디에 속하는가? <토이 스토리 4>가 그 질문에 대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자유”를 답으로 내놓았다면, <토이 스토리 5>는 한 걸음 물러나 다시금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본작은 새로운 결론이라기보다 오래된 결론으로의 유턴에 가깝다. 5가 4를 부정하고, 4가 3을 부정하는 말장난 같은 시리즈지만, 영 밉지는 않게 그리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일 것이다. <토이 스토리 5>가 재미있는 영화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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