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주고 돌려받다
<もののけ姫>, 1997
<모노노케 히메>는 대작이다. 자국의 고대 신화를 차용한 설정, 신과 인간의 대립, 장중한 오케스트라 음악과 ‘살아라, 그대는 아름답다’라는 비장한 캐치프레이즈까지. 이미 수없이 분석되고 해체된 거장의 걸작을 이제와 곱씹는 게 의미가 있는 일일까 싶지만, 그럼에도 영화의 주인공 아시타카처럼 정면으로 돌파해 보고자 한다.
많은 관객이 헷갈리는 부분이지만, 아시타카 여정의 목표는 도입부에서 재앙신에게 물려받은 저주를 푸는 것, 즉 해주가 아니다. 마을을 떠나는 그에게 원로가 내리는 사명의 정확한 인용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사물을 보고 올 것’이다. 번듯한 왕자님답게 아시타카는 두 시간 내내 이 사명을 반복한다. 여정의 첫 번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전란에 휩싸인 마을에 들어서는 장면을 보자. 아시타카는 언덕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읊조린다. ‘전쟁인가?’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 전, 그를 원군으로 착각한 사무라이들에 의해 쫓기다 저주에 걸린 오른손의 발작으로 두 명의 사내를 죽이게 된다. 한 사람은 양팔을, 한 사람은 머리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가공할 파괴력이다. 민간인을 해치려는 사무라이를 막으려는, 엄연히 선한 의도로 행한 일이었으나, 이 역시 예외 없는 폭력이기에 저주에 깃든 증오의 매개가 된 것이다. 아시타카는 살인자로서 무대에 들어선다.
타타르 마을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향하는 길, 아시타카는 폭포를 타고 내려오는 갖가지 물건들과 인간과 동물의 사체를 마주한다. 모로와의 전투 중 떠내려온 것들이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두 사내를 발견한 아시타카는 그들을 구출해 마을에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한 사람은 팔을, 한 사람은 머리를 다친 모습이다. 붕대를 감아 응급처치를 마치고 아시타카는 본격적으로 산을 오른다.
타타라 마을에 당도한 아시타카는 두 남자를 아내에게 돌려주고, 그곳의 촌장인 에보시와 대면한다. 여자들이 일하는 제철소와 나병 환자들이 탄환을 만들고 있는 움막을 돌아보며 직접 마을의 생태를 확인한 아시타카는, 이내 그곳에 찾아온 이유를 밝히며 에보시에게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된 재앙신에게 박혀있던 탄환을 그녀에게 돌려준다. 싸움을 멈출 것을 촉구하지만, 에보시는 사슴신의 피가 가져다줄 효용을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밝히고, 이내 산이 그녀를 암살하기 위해 마을로 뛰어들며 상황이 악화된다.
<모노노케 히메>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는 단연 에보시와 산의 정면 대결이다. 이전까지는 배경으로만 작용하던 인간과 자연의 대립이, 두 주역 여성의 모습을 띄고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아시타카는 맨손으로 서까래를 뜯어 던져 싸움을 막고자 하지만 산은 그를 제치고 에보시에게 돌진한다.
싸움을 중재하며 막아서는 아시타카에게 에보시는 ‘들개를 아내로 삼기라도 할 셈이냐’며 조소한다. 과연 타타르 마을 사람들의 산을 향한 시선은 ‘인간성을 상실한 괴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시타카가 처음으로 본 산의 모습은 맹목적으로 인간을 해치고 이빨을 드러내는 야수가 아니라, 어머니 늑대 모로의 상처에서 피를 빨아내는 효녀였다. ‘흔들림 없는 눈’이라는 사명이 첫 번째로 발현된 순간으로, 이후에 ‘그대는 아름답다’라며 산을 긍정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일찍이 그녀의 본질을 꿰뚫어 본 까닭이다. 아시타카가 싸움을 중재하는 과정 역시 1. 지켜보고, 2. 분노한 뒤, 3. 개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이후 에보시는 마을 사람들에게, 산은 모로에게 돌려주며 마무리된다.
응시의 힘은 또 총상을 입은 아시타카가 사슴신에게 치유받는 장면에서 극적으로 강조된다. 먼 거리, 그림자 속에서 어슴츠레하게 이루어졌던 둘의 첫 대면과 달리 두 번째 대면에서는 사슴신이 직접 빛 아래로 걸어 나와 모습을 드러낸다. 의식을 잃은 아시타카 – 사슴신의 정면 숏 – 다시 아시타카라는 노골적인 장면의 배열 이후, 아시타카는 감쪽같이 회복된 채 등장한다. 관찰자가 다시 관찰받음으로써 치유받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이루어질 호혜의 시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슴신이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된다는 암시는 그 이전에도 등장한 바 있다.)
전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에보시는 사슴신에게 일격을 날려 그의 머리를 빼앗는 데 성공한다. 이내 잘린 목에서 닿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빼앗는 검은 촉수 다발이 나와 일대를 뒤엎고, 화를 잠재울 방법은 머리를 돌려주는 것 밖에 없음을 아시타카는 깨닫는다. 산과 함께 분투한 끝에 아시타카는 머리를 돌려주는 데 성공하고, 다시금 산천이 꽃과 녹음으로 물드는 것을 지켜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야기 내내 반환과 응시라는 두 개의 행위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상병을 아내에게 돌려주고, 탄환을 에보시에게 돌려주고, 에보시를 타타라에, 산을 모로에게 돌려주고, 남자들을 여자에게 돌려주고, 머리를 사슴신에게 돌려준다. ‘사람과 숲이 각자의 위치에서 살 수는 없는가’라는 일견 나이브하게도 들리는 아시타카의 신념은, 이처럼 고되고 반복적인 작업으로 점철되어 있다. 또한 이 반환의 과정에 따라오는 윤리로서의 응시도 중요하다. 산을 들개가 아닌 극진한 마음을 가진 딸로서 보는 것, 인간을 탐욕의 무리가 아닌 자생적 공동체로 보는 것, 사슴신의 진가를 깨닫는 것- “사슴신은 꽃을 피우는 신이었구나” 사슴신이 돌아간 뒤 꽃이 만개하는 언덕을 보며 마을의 사내는 이렇게 말한다. 구도자인 아시타카만 행해왔던 목도와 재평가의 과정이 최초로 민간에서 이루어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 응시의 행위는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다시금 그것을 지켜보는 최종적 관찰자인 관객에 도달한다. 마지막 장면의 흐드러진 음악과 목가적 영상미는 고생한 주인공에게 내려지는 보상이 아니다. 그것은 이 아름다움을 돌려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상기시키는, 경고이자 선언이다.